1. 시계

아버지 시계
째깍째깍
손목시계

우리시계
뚝딱뚝딱
벽시계

내 시계
쪼르륵쪼르륵
배꼽시계


2. 우리 아가

엄마
엄마가 아니고
맘맘야
맘마

맘마
맘마가 아니고
엄마야
엄마

빠빠
빠빠가 아니고
아빠야
아빠

아빠
아빠가 아니고
빠빠야
빠빠

이 두편 동시중 어느 것에 곡을 붙일까 한참 망설였다.
‘배꼽시계’, ‘엄마맘마’들의 가사가 무슨 문답이나 하는 것처럼 연달아 뒤바뀌는 바람에 어느 하나에만 맘을 쓸 수 없었다. 끼니때가 되기도 전에 쪼르륵쪼르륵 ‘어서 들어오라’고 배안에서 독촉을 한다.
‘엄마!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
‘오냐 맘마 줄까’
엄마는 맘마였나 엄마가 좋아라 눈을 맞추며 종합영양의 젖을 먹는 아기- 다섯 살이 넘도록 나는 엄마 팔에 안기어 빈 젖꼭지나마 자주 빨았다. 지금 그 엄마는 아니 계시다. 그러나 주제의 가사들이 불현듯 그분의 모습을 내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새삼 엄마맘마가 그리워졌다. 저때의 정경을 회고하며 나는 홀로 계면쩍은 웃음에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맘을 정했다 ‘배꼽시계’에 곡을 붙이기로하고 다시금 그 가사를 음미했다. 일, 이절에서는 손목시계 벽시계를 들고 나오더니 제3절에 이르러 그것들을 쪼르륵 쪼르륵에 맞추어 보라는 듯 새로운 전환의 느낌을 자아낸다.

화신술도 근사 무슨 변증법인가. 배꼽은 배꼽이다. 손목이나, 벽과는 거리가 멀다. 째깍째깍은 뚝딱뚝딱이 아니다. 이들에 비하여 쪼르륵 소리는 아예 다르다. 한데 이들 형용사에 시계라는 일반개념을 붙여가다 어느덧 배꼽을 주격삼아 쪼르륵 시계로 숨길을 돌리며 아기 예술을 탄생시켰다. 이런 나의 해석에 대하여 이의도 있을성싶다.
  한번 읽어 쉽사리 납득이가는 동시 따위를 그토록 어렵게 되까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단편시라 하더라도 그 나름의 철학이 없으랴 더욱이 생철학(生哲學)이란 난해대작(難解大作)의 독점물이 아니다.
  
동요인 ‘시계’나 ‘우리 아가’에 나오는 말들만 해도 원천어(源泉語)라 할까 태생어(胎生語)라 할런지 원시사회 이전의 생성적 형용어 같다. 감각, 감정, 재치, 재롱, 공상, 유희… 나아가서는 눌언, 괴변, 웅변, 해학… 그리고 무능의 자각, 겸양의 주체심, 드디어는 창의적 감수성… 통틀어 이런 것들이 한 작은 생명체안에 부풀고 있지 않았던가 모든 예술에는 미래를 보는 무한가능의 것들이 고무하고 있다. 쓰다보니 무당 넋두리가 되어버린 듯. 그러나 내 이면에선 어느 예술인을 대하게되든 그런 내 나름의 종합적 평가작용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연히 처음으로 시인 김원석씨와 대화를 가졌을 때만해도 마찬가지였다.
그후 우리는 사무적으로 자주 만나게 됐다. 이렇게 교분이 쌓여갈수록 나는 그의 깊이나 높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따끈한 전기난로가 아니라 훈훈한 숯불화로 같았다.
그 인격이 소박 겸손도 했거니와 말이 적은 그의 사념에는 여러 가지 내면적 갈등도 없지않았겠지만 언제나 평온한 감정으로 사람들을 싸안는 듯 그의 말투는 은근하고도 부드러웠다.

그런가하면 때따라 숨은 결기를 포정할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줄기찬 노력으로 전진을 다짐하는 부지런장이었다 하면서 어린이다운 붙임성도 익살스러운 장난기도 엿보이는 듬직한 그릇이었다. 문뜩 나는 소파 방정환이가 연상됐다. 얼굴이 둥그스레한 것이며 뚱뚱보는 아니지만 때따라 배짱을 부릴까도 싶은 풍부한 몸집에다 키도 방불 성격도 비슷- 현대판 방정환이로구나 하며 육십여년전 색동회 창립시절의 향수를 느끼며 원석씨를 다시 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붓대가 본론을 저버린채 인물평이라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예술은 ‘인생이다, 인품이다, 사회다, 역사다… ’이런 논리에 비추어 망발은 아닐테지.
각설하고 원석씨의 시문학은 단편이며 단편의 연결이었다. 동시나 성인시 모두가 그랬다.
나는 그의 동시집 「초록빛 바람이…」를 읽어나가다 우연히 「섬」이란 시에 머물었다.

바다를 건너는 갈매기
날개 아플까봐
듬성 듬성 놓인 징검다리

바다를 들볶는 파도
모래톱이 불러들여
품에 안아 달래고

구름이 물에 젖을까
하늘을 받치는

종일토록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뱃고동소리
모두 품어 바다가「엄마」하고 부르는 섬

이 시에 대하여 미안하지만 내 멋대로 지껄여 보련다.
이 시는 단편 넷의 연결이다. 그중 세 번째, 구절을 빼놓곤 그중 어느 한편만으로도 훌륭히 시의 틀은 잡힐 것 같다. 그런가하면 좌우로 상하로 종횡무진의 전체감을 메아리는 세계가 떠오르기도 한다. 바다를 건너는 갈매기에게 숨을 돌려가라는 징검다리의 역할이 맹랑하다.

바다에 징검다리라니 좀 의심쩍지만 그것은 다도해로 보아도 좋겠지.
바다를 들볶는 썰물밀물의 치고받는 혼란을 넌지시 불러들여 품에 안아준다는 모래톱- 해안이나 강변의 모래밭을 일컬음일텐데 지그재그의 해안선이 톱니의 날카로움을 시늉하면서 부드럽게 물살들을 안아들이는 모순감을 차원높은 수법으로 처리한듯- 피카소의 입체파적 운필을 보여주는 것처럼- 일면 그것은 치밀하고도 상냥한 모성애가 짓궂은 선모습들을 안아달래주는 상징적 표현이기도 했다.

이상 두 절은 횡적이며 평면적이다. 수평상에 제한된 나들이다.
한데 제3절에서 불쑥 구름이 나선다. 구름은 높다라니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 꿈 많은 나그네의 바람먹은 소매자락 같은 것
너는 바람을 불러 흐트러지기도 하고 비가 되어 떨어지기도 하면서 때로는 소나기로 둔갑, 바다에 광란을 일으킬까싶은 모험가- 위험 내포의 개구쟁이가 아니었던가.
한데 구름이 물에 젖을까 하늘을 받친다니 웬말인가- 의미가 애매하다. 다의(多意)적인듯 알송달송한대로 제4절의 결구가 매혹적이다.

파도, 새, 바람 뱃고동… 모두 소리소리 연달아 하늘을 받쳐드는 가운데 불현듯 바다가 이것들을 가득 품은채 흘러굴러 지긋이 기다리고 있는 섬나라에 다닫자 ‘엄마!’하고 외쳤다했나. 여기 씌운 ‘엄마’는 명사 이상의 감탄사다 어머나! 천야만야 흰꽃송이 날리는 비무(飛舞)의 축제였던가.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런 내 나름의 감상을 반성해보자 거듭 나는 미안해졌다. 조용히 부드럽게 회술된 서정의 연맥을 너무 충격적으로 납득했기 때문인가.

그럼 평가의 평가는 작가에 맏기기로 하고 다시 본제의 시계노래로 돌아가본다.
애교 재롱의 희담이 담뿍 실린 이 가사의 리듬을 따라 한 곡조 붙이고저 우선 나는 나에게 동심적 채비를 요청했다. 내가 당장 어린이가 될 수도 없거니와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나의 유년시대를 상기해봤댔자 소용없는 일.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현재의 그들과는 한팔십년 가까운 동안이나 멀어져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내 깊은 곳에 묻힌 동심을 자각한다 해도 오늘날의 어린이가 지닌 그것과는 비슷하다곤할망정 아예 똑같을 수는 없다. ‘흡사하다, 방불하다, 유사하다, 서로가 다른대로 가까워진다, 등등’에서 공감대는 열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어린이다운 어른이 되어 우정적으로 같이 놀아주는 가운데 그윽한 교육기능의 보람을 찾자는 의식구조를 역설했던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강조도 했지만, 일껏 그런 곡을 붙혀보자니 ‘시계’가사는 만만치 않았다.

이웃집 5~6세동이에게나 알아볼까 또는 그 엄마의 도움이라도 청해볼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렵기만 했다. 어쩌다 곡 하나 되어져 나오면 몇 번이고 웅얼거리다 마깥지 않아 처분해버리기도 했다. 이런 고정(苦情)을 밑거름으로 타당성 있는 작품을 벌려봤지만 그 역시 희망에 그쳤을뿐 드디어 별것도 아닌 곡조가 되어졌다. 유치원 아기들이 좋아불러줄 것인지 과연 그들 엄마 앞에 선택될 것인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아기들은 그 자체가 예술적이다. 아기예술은 모두 상징적이다- 더듬는 말투나 옹아리에 방불한 가락이나 부닐른 몸짓 등등 암시며 투영, 해조(諧調) 아닌 것이 없다. 이런 것들을 늙은 어린이쯤으로 시늉내보자는 것이 무리었을지 몰라도 한껏 내 본래의 동심을 기우려 미숙한대로 제작해 놓았다.

묻노니 김원석씨도 나와의 멀지 않은 위치에서 모두 어린이 예술에 참여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로 말미암아 동심적 시어(詩語)를 통해 언약 없는 인간 동지가 되어진 것 같다.
원석씨는 소년지의 편집책임자이다. 문외한인 내가 어찌 왈가왈부하랴만 인기전술이나 돈벌기 작전을 비켜 동심일의로 순도 높은 편찬을 연구, 실천하려는 의지만은 뚜렷해보였다.
나는 이 믿음직한 잡지를 만들어내는 역군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이었나. 나의 소원대로 가톨릭광장의 문은 열렸다. 원석씨를 따라 출판과정의 모든 장면을 순례하게 됐다. 그 기구(機構)들은 과학적 연결을 과시하는 일사불란의 유기체 같았다. 그중에서도 제품들을 싸고 묶고하는 기계요술들이 놀랍게도 내 동심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기계를 다루는 분들이나 사무에 열중한 직원들을 볼 때마다 일에 방해가 되면 어쩌나 싶으면서도 나는 무척 고마워졌다. 모두들 일손을 멈추지 않은채 한 순간 미소를 띄우며 말없이 반가운 눈빛으로 한 순간 나를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톨릭광장은 어딜가나 미소에 쌓인 성실, 소탈, 불굴의 추진력 등을 표정하는 문화전당이었다. 서로 분야가 다르면서 혼연일체의 인간애가 넘치는 향훈이야말로 무궁한 끈기를 자부하는 담담 소박한 꽃중의 꽃- 무궁화 동산이 아닐 수 없었다.

가톨릭 출판사여, 삼백호 기념의 소년지여-, 이날 나는 하늘높이 만세 만세의 비둘기를 띠우련다. 멀리서 날아드는 영생불사조의 넋을 따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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